도쿄를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먼저 걷는 사람의 몸을 떠올린다.
무언가를 거창하게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도시의 결을 몸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걷는 사람. 아침의 편의점 앞에서 커피를 들고 잠시 멈춰 서 있는 사람, 출근하는 군중 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결국은 혼자만의 리듬으로 골목을 향해 방향을 틀어 버리는 사람. 나는 그런 방식으로 도쿄를 여행해 왔다. 그리고 그 여행은 언제나 내게 묘한 확신을 남겼다. 삶이란, 어쩌면 성취의 목록보다도 얼마나 자주 감각이 깨어 있는가에 의해 더 정확히 측정되는 것인지 모른다고.
나는 한동안 여행을 특별한 경험의 연속이라고 생각했다.
전시, 쇼핑, 유명한 맛집, 남들이 다녀왔다는 장소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생각은 조금씩 옅어졌다. 도쿄에서 내게 오래 남는 것은 대개 가장 화려한 장면이 아니라 가장 평범한 순간들이었다. 오래된 간판이 붙어 있는 골목, 비에 젖은 아스팔트가 아침빛을 반사하는 장면, 지나가는 앰뷸런스의 짧고 날카로운 소리, 누군가의 일본어 대화가 문장과 문장 사이의 공기까지 포함해 흘러가는 순간. 나는 그런 사소한 것들 속에서 오히려 깊은 충만을 느낀다. 거대한 감동이 아니라, 작은 감각들이 연이어 닿을 때 생기는 조용한 포만감. 그것이야말로 내가 도시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종종 여행을 “무엇을 보았는가”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내게 여행은 “어떻게 머물렀는가”에 더 가깝다. 발길 닿는 대로 걷고, 특별한 일정에 내 몸을 맞추지 않으며, 그날의 기분에 따라 멈추고 돌아서는 일. 그렇게 하루를 쓰면 도시는 더 이상 배경이 아니다. 하나의 관계가 된다. 내가 도쿄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곳이 나를 압도하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깨어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도시가 너무 잘 짜여 있어 오히려 자유로운, 그런 역설적인 감각이 있다. 나는 그 안에서 내가 소비자가 아니라 관찰자이며, 구경꾼이 아니라 체류자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이런 여행이 가능한 이유는 아마도 내가 점점 충만함이라는 말을 믿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시기에는 삶의 목적을 성취의 크기에서 찾으려 했다. 돈, 명성, 결과, 평가.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런 것들은 삶의 본질에 닿아 있지 않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하루를 잘 살았는지, 한 해를 잘 통과했는지는 결국 내가 얼마나 내 삶에 충실했는지로 결정된다.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느꼈는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분명하게 살아 있었는가. 나는 지금 그 질문에 더 가까이 서 있다.
도쿄는 그 질문을 자주 되묻게 하는 도시다.
왜 또 이곳인가, 왜 자꾸 다시 오고 싶은가. 그 대답은 아마도 단순하다. 나는 그 도시에서 나의 감각이 가장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아침의 거리에서 출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세상의 한쪽 끝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또렷해진다. 무엇을 더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이 잠시 멀어진다. 대신 “지금 이 순간이 이미 충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린다. 그 가능성은 아주 작아 보이지만, 놀라울 만큼 강하다. 인생의 많은 피로는 어쩌면 그 가능성을 잊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외로움의 대체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누구의 속도에도 휘둘리지 않고, 누구의 기대에도 맞추지 않은 채,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멈추고 싶은 곳에서 멈춘다. 그러면 하루는 유난히 세밀해진다. 골목의 너비, 바람의 방향, 신호등이 바뀌는 순간의 정적, 간판의 색이 조금 바랜 이유까지도 눈에 들어온다. 나는 이런 미세한 감각들이야말로 삶을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들어 준다고 믿는다. 거창한 기념보다, 반복되는 감각의 정확성이 더 오래 사람을 지탱한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러닝이든 턱걸이든 실내 근력운동이든, 나는 거의 매일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을 몸에 돌려준다. 처음에는 몸을 위한 습관이었지만, 지금은 정신을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운동하는 동안 나는 거의 오직 운동만을 생각한다. 그 집중은 단순한 금욕이 아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선택해 내 몸을 움직인다는 감각. 그 감각이 내 안에 아주 큰 안정감을 만든다. 나는 그 한 시간 동안, 삶의 주도권이 여전히 내 손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몸은 땀을 흘리지만 마음은 오히려 맑아진다. 운동이 끝난 뒤 남는 것은 피곤함보다 평온에 가깝다. 그 평온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스스로를 통과해 온 사람만이 얻는 조용한 자부심이다.
결국 여행과 운동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하나는 도시를 향해 열려 있는 감각이고, 다른 하나는 몸 안으로 깊어지는 감각이다. 도쿄의 거리에서 나는 세계의 넓이를 느끼고, 운동의 시간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의 깊이를 느낀다. 둘 다 내 삶을 충만하게 만든다. 둘 다 내가 나의 선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중요하다. 충만함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이런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내는 생활의 밀도에 가깝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도쿄를 찾고, 계속 걷고, 계속 달리고, 계속 매달릴 이유는 어쩌면 거기에 있을 것이다.
삶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리듬으로 하루를 채우는 일이라는 것. 나는 이제 그 사실을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은 이상하게도 아주 실용적이다. 아침의 편의점에서 시작되는 한 도시의 하루, 운동 후 몸에 남는 묵직한 평온, 그 사이를 잇는 내 발걸음.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충분하다고 느끼는 순간, 삶은 비로소 조금 아름다워진다.
